한국의 산하 _ 지리산 종주

지리산 종주기 : 10월의 지리산 종주기

ㅇ일시 : 2000/10/01-03(2박 3일)
ㅇ종주코스 : 성삼재-장터목-천오항봉-장터목-백무동
ㅇ종주사진(2000/10/01-03)

종주일정 요약( 9월30일∼10월3일(2박 4일)

□ 9월30일: 23:59 진주행 영등포 출발
□ 10월1일: 05:00 구례구역 도착
□ 06:15 성삼재에서 종주시작
□ 10월1일: 벽소령산장 1박
□ 10월2일: 장터목산장 1박
□ 10월3일: 12:30 백무동 하산
□ 16:40 남원에서 서울행 고속버스 출발
□ 21:00 서울도착

구례구역에서 내린 지리산 등산객은 100 여명이 훨씬 넘고...
영등포역에서 11시 59분 진주행 무궁화호 열차를 타고 구례구역에 내리니 새벽5시다. 보통 구례역으로 알고 있지만 정확한 역명은 구례구역이다. 구례구 역은 행정구역상으로는 순천시이나 구례에 가까워 구례로 들어가는 입구라 하여 입구자(口)를 붙여 "구례구역"이라 한단다.

새벽 5시, 구례구 역에서 내린 승객은 거의 대부분이 지리산을 가는 등산객으로 100 여명이 훨씬 넘었다. 대기하고 있는 구례 버스터미널로 들어가는 시내버스가 초만원이다. 운전기사가 한번 더 올테니 남은 사람들을 기다리라 하고 버스가 출발한다. 다음 버스도 초만원일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버스를 타지 못했다.

구례 버스터미널에서 택시로 성삼재 가다.
5시20분 버스터미널에 도착했다. 6시에 성삼재가는 버스가 있다. 얼마 전에 성삼재까지 버스요금이 3,000원으로 인상되었다. 버스 출발 할 때를 기다리는데 택시기사가 성삼재까지 2만원, 일찍 출발하여 여유롭게 산행할 겸 택시를 탔다.
버스터미널에서 성삼재까지 택시로는 20여분.

성삼재에서 6시15분 종주를 시작하고
지리산의 수 많은 등정 길 중 이름있는 길은 계곡코스이고 능선으로 오르는 코스도 몇 개가 있지만 종주를 위하여는 성삼재만이 유일하게 고개에서 오른다. 성삼재 도로가 나기 전에는 화엄사에서 노고단까지 4시간을 계곡을 따라 오른다. 성삼재에서는 1시간이면 누구나 노고단을 오를 수 있다. 관광버스를 타고 성삼재에서 내려 노고단까지 올랐다가 내려오는 관광객도 많이 있다.

화엄사에서 4시간을 걸려 힘들게 노고단까지 오르지 않고 성삼재에서 1시간이면 노고단까지 오를 수가 있어 화엄사에서 종주를 시작할 때보다 지리산 종주를 다소 쉽게 할 수가 있다. 성삼재가 해발 1,090m, 성삼재에서 노고단(1,507m)을 올라 1,915m인 천왕봉 까지 봉우리를 오르내리며 고도를 높여가며 종주를 한다. 6시15분에 성삼재를 출발하여 6시55분에 노고단 산장에 도착하였다.

노고단에서 아침식사
오늘의 식사메뉴는 노고단에서 라면을 끓여 아침식사를 하고 점심은 토끼봉에서 김밥이다. 잘 갖추어진 취사장, 취사장에 유일하게 물이 있는 산장이다. 식수도 풍부하다. 라면으로 아침식사를 하고 8시에 출발한다. 취사장에서 10여분만에 돌탑이 있는 노고단에 오른다. 노고단 정상은 휴식년제로 출입이 금지되어 있다.

노고단에서 화개재 까지는 등산로가 비교적 완만해
노고단에서 화개재까지는 등산로가 비교적 완만하다. 노고단 정상의 산 허리를 돌아 40분, 돼지령을 오르면 본격적인 주능선에 올라서게 된다. 키가 작은 철쭉이 등산로 좌우에 검붉은 색을 뛰고 물들어 있다. 해발 1,400m 정도가 되기 때문에 10월초인데 벌써 단풍이 들기 시작한다. 맑고 높은 푸른 하늘 아래 멀리 내려다 보이는 계곡의 운해가 볼 만하다.

임걸령에서 휴식하며 식수를 채우고
돼지평전에서 1시간, 1,424봉을 올라 내려가면 임걸이라는 장군이 지키고 있던 곳이라는 임걸령이다. 임걸령에는 간이화장실이 있고 샘이 있다. 오른쪽으로는 피아골로 통하는 길이 있다. 임걸령 샘은 수량이 풍부하며 지리산 샘 중 가장 물 맛이 좋다고 한다.

식수를 가득 채우고 쉬어간다. 다음 식수는 연하천까지 가서 채운다. 중간에 뱀사골산장에 식수가 있지만 뱀사골산장이 능선에서 200m를 계단으로 내려가야 하므로 힘이 들어 연하천까지 갈 식수를 보충한다.

노루가 머리를 들고 있는 형상이라는 노루목
임걸령에서 15분정도 가파르게 오르면 완만한 능선이 이어진다. 밑에서 바라보면 바위가 노루가 머리를 들고 있는 형상 같다는 노루목, 여기서 반야봉 오르는 길이 있다. 반야봉은 오르지 않고 노루목에서 조망을 보며 한숨을 돌리고 삼도봉으로 향한다.

삼도를 가르는 삼도봉
전라남도, 전라북도, 경상남도를 가르는 삼도봉, 노고단에서 3시간이 걸렸다. 비교적 완만한 등산로라 쉬엄쉬엄 올라 왔다. 시야가 탁 트인 삼도봉, 멀리 천왕봉과 천왕봉에 이르는 주능선이 한눈에 들어오고, 뒤돌아보면 지금까지 걸어온 노고단 이르는 주능선이 가까이 있다. 남으로는 불무장등이 누워 있는 듯 길게 뻗어 있다. 불무장등(不無長등)은 없는 듯한 긴 등이라는 뜻으로 지리산 봉우리 중 봉이 아니라 등이라는 이름이 붙혀진 봉우리이다. 삼도봉에서는 지리산 등뼈인 주능선이 장쾌하게 펼쳐진다. 많은 등산객들이 쉬어간다.

화개장을 가기 위하여 넘나들었다는 화개재
능선 북쪽의 뱀사골 사람들이 화개장을 가기 위하여 넘나들었다는 화개재, 삼도봉에서 1시간 정도 거리이다. 삼도봉에서 단풍나무가 반쯤 곱게 물들은 활엽수와 어우러진 숲이 가을정취를 한껏 돋운다. 숲속을 따라 산허리를 돌아가다 보면 나무계단이 있다.

잘 놓여진 나무계단과 주위의 단풍에 취해가며 나무계단을 내려간다. 나무계단은 15분 정도를 내려갈 정도로 길다. 나무계단이 끝나면 넓다란 능선안부가 화개재이다. 화개재에서 토끼봉을 오르기 위하여 오르막 길이다. 잠시 숨을 돌리고 쉬어간다.

가장 힘들게 토끼봉을 오르다.
여름 종주 때 두 번 정도 지친적이 있다. 체력에 따라 다르기는 하나 종주시 한두 번은 지치게 된다. 이번 종주에서 가장 힘들었던 구간이 화개재에서 토끼봉 오르는 1시간과, 하산시 백무동계곡의 하동바위 부근 1시간 이었다.

토끼봉이란 명칭은 주변에 토끼가 많다거나 봉우리가 토끼 모양이라서 토끼봉이 아니고 반야봉을 기점으로 동쪽, 즉 24방위의 정동(正東)에 해당되는 묘방(卯方)이라 해서 토끼봉(卯峯)으로 부른다.

화개재에서 고도를 높여가며 오르막길을 1시간 정도 계속 오른다. 급경사나 등산로가 그리 험한 것도 아닌데 무척이나 힘이 들어 두 번을 쉬어 올라간다. 성삼재에서 부터 5시간 정도 걸어 피로할 때도 된데다 화개재 까지는 비교적 완만하게 오르내리며 오다 1시간을 계속 오른다는 것이 쉽지 않다.

거기에다 삼도봉에서 화개재로 내려 설 때 15분 정도의 긴 나무계단을 가을정취에 취해 너무 쉽게 내려가다 일행이 다리에 무리가 온 것이다. 국립공원에는 이러한 나무계단이 많다. 초보자는 이런 나무계단을 쉽게 생각하게 되는데 내려갈 때 주의하지 않으면 다리에 무리가 가게 된다.

토끼봉에서 점심식사를...
힘들게 올라간 토끼봉, 정상에는 헬기장이 있다. 그늘을 찾아 준비해온 김밥으로 점심식사를 한다. 저녁에 먹으려 준비해온 배추쌈에 김밥을 싸서 먹으니 별미이다. 옆에서 식사를 하는 다른 일행은 라면을 끓이고 있다. 산장 아닌 다른 지점에서 취사를 하는 것이 옳은지...

식사를 하고 끓인 물을 얻어 커피를 마신다. 임걸령에서 채운 식수가 다 떨어졌다. 1시간30분 이상 가는 연하천에 가야 식수가 있고 그 이전에 1시간 정도가면 총각샘이 있다. 총각샘에서 식수를 채우면 되겠다고 하였더니 옆의 일행이 총각샘이 어디 있는지 못 찾았다고 한다.

초보자들 총각샘 찾기 어려워
토끼봉에서 50여분을 가니 언덕에 바위가 우뚝 서 있고 연하천 1km 안내표지판이 있다. 여기가 총각샘 같은데 둘러보아도 샘이 보이지 않는다. 몇 사람이 쉬고 있는데 총각샘이어디 있느냐고 물어 보니 연하천 1km 표지판 뒤 언덕 넘어 20여미터 내려가면 총각샘이 있다 한다.

커다란 바위아래 물이 가늘게 흘러내린다. 어린아이 오줌만큼씩... 물병에 바로 받을 수 없고, 컵 같은데 받아서 물병에 담아야 한다. 옛날 지리산에 약초 캐러 왔던 한 총각이 물을 찾아 헤매다가 사냥꾼에게 쫓기는 노루를 숨겨주었더니 노루가 샘으로 안내해 주었다하여 총각샘이라 한다고 한다..

연하천서 땀을 닦고
총각샘에서 연하천까지는 30여분, 산허리 오르막길을 올라 선 후 능선을 타고 가다 보니 나무계단이다. 주능선에는 긴 나무계단이 삼도봉에서 화개재로 내려설 때와 이곳의 두 군데가 있다. 긴 나무계단을 타고 숲속을 내려가다 나무계단이 끝나면서 연하천에 이른다. 6시15분 성삼재를 출발하여 오후3시15분에 연하천에 도착, 식사시간을 포함하여 9시간이 걸렸다. 물이 풍부한 연하천, 세수를 하고 땀을 닦으며 식수를 채운다.

형제봉-벽소령 구간 심한 너덜지대
연하천서 벽소령산장 까지 2시간정도 소요된다. 숲속을 따라 완만한 능선을 타고 가다 능선을 내려서면 바위 두 개가 등을 지고 우뚝 서 있는 형제봉 , 연하천에서 형제봉까지 50여분이다. 형제봉에서 벽소령 가는 1시간중 산허리를 돌아가는 30분은 주능선 종주코스 중 가장 심한 너덜지대이다.

벽소령산장에서 1박할 예정이니 시간에 그리 쫓길 필요가 없어 조망도 즐기며 쉬엄쉬엄 쉬어가다 보니 연하천산장에서 2시간30분이 걸려 벽소령에 도착한다. 성삼재에서 6시15분 종주를 시작하여 11시간, 오후 5시 30분에 벽소령산장에 도착하였다.

물이 귀한 벽소령산장에서 1박
오늘은 벽소령산장에서 1박이다. 산장예약은 한 달 전에 하였다. 예약을 확인하여 침상번호를 배정받고 저녁식사 준비를 한다. 벽소령산장은 능선에 위치하고 있어 물이 50m 아래에 있다. 쌀을 씻으려 내려가니 다리가 뻐근하여 내려가기도 힘들다.

식수는 쫄쫄 나오는데 쌀을 씻기 위하여 10여명이 줄을 서 있다. 세수는 엄두도 못 낸다. 물이 워낙 작게 나와 쌀을 씻는 데도 20여분을 기다린다. 코펠에 쌀을 넣고 식사준비를 하는데 어둠이 깃들며 날씨가 싸늘해지기 시작한다.

지리 10경의 하나인 벽소령 명월, 명월도 아니고 그믐이 지난지 며칠 안 되는 초생달인데다 구름이 잔뜩 끼어 벽소령 명월은 볼 수가 없다. 피곤하여 저녁식사를 하고 산장으로 들어가 바로 잠자리에 든다. 산장은 지은지 몇 년 안 되 깨끗하다. 산장 이용료 5,000원, 담요 대여료 1장에 1,000원. 산장은 침상으로 2층으로 되어 있다. 아래는 남자, 위는 여자가 배정되었다.

기상대 일기예보 믿을 수 없어
침상에 들었다가 밖을 나오니 안개인지 구름인지 자욱하고 빗방울이 떨어지고 있다. 안개비 같으면 내일은 비가 오지 않겠지 하고 잠자리에 들었으나, 아침에 일어나니 비가 부슬부슬 내린다. 출발하는 날 기상대 사이트의 3일간 일기예보는 맑고 구름 조금으로 되어 있었는데 비가 내린다.

이 날 하루종일 비가 오락가락 하더니 오후 3시 넘어서야 그쳤다. 우의는 1회용으로 준비하였으나 일기예보 믿고 준비하지 못한 등산객이 많았다. 지리산은 다우지역이어서 일기예보에 관계없이 종주시 우의 휴대는 기본이다.

선비샘 여름보다 수량 적어
아침식사를 하고 7시30분 2일째 종주에 나선다. 오늘은 세석에서 점심식사를 하고 장터목산장에서 2박이다. 벽소령산장에서 선비샘 까지는 1시간거리, 비교적 완만하다. 여름 종주 때는 비가 온 뒤라 물이 콸콸 나왔었는데 벽소령산장 보다 조금 많을 정도로 물의 양이 적다. 비가 내려 식수만 채우고 출발한다.

선비샘은 옛날 이씨 노인이 화전민의 자손으로 태어나 가난에 쪼들리며 배우지 못해 무식하여 주위사람들로부터 천대받고 살았는데 평생 한번이라도 선비대접을 받아보았으면 하는 소망이 있었다. 그는 세상을 떠나면서 상덕평 샘터 위에 묻어 달라고 유언을 했었고 그로부터 지리산을 찾는 등산객들이 물을 마실 때면 이 노인의 무덤 앞에 무릎을 꿇고 절을 하게 되어 선비대접을 무덤 속에서 받았다는 얘기가 전한다.

지루하고 힘든 선비샘-세석 구간
선비샘에서 세석산장까지 2시간 거리는 지리산 능선 종주 중 지루하고 힘든 구간으로 알려져 있다. 돌과 바위로 된 너덜지대에 오르내리기를 반복하며, 숲속에 가려 조망도 별로없어 지루하고 힘든 구간이다.

더욱이 비는 부슬부슬 내리니 더욱 지루하고 힘들 수밖에. 이때 일행 중 한명이 서편제 영화 중 한 장면을 연출하여 우의를 입은 채 덩실덩실 춤을 추며 진도아리랑을 한바탕 신명나게 부르기 시작하자 지나가든 등산객도 일심동체가 되어 따라 부른다. 비를 맞으며 불렀든 진도아리랑, 그날은 아마 두 번 다시 있을 수 없는 추억이 될 것 같다. 어느새 피로는 싹 가시고 발걸음도 가볍게 지도상의 2시간 거리를 3시간으로 여유롭게 걸어간다.

덕평봉에 올라서기까지 40여분은 조망이 없다. 덕평봉에 올라서니 시야가 트이나 빗속에 가려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다. 덕평봉에서 30여분을 가니 칠선봉, 여기저기 작은 바위들이 솟아있는 주위에 초록과 어우러진 단풍이 곱다. 일곱선녀가 서 있는 것일까. 우뚝우뚝 솟아 있는 바위를 세어보니 일곱 개 같기도 하고 넘기도 하는 것 같다. 칠선봉을 지나 쇠줄을 잡고 가파르게 영신봉을 오른다.

광할한 세석평전 장관
영신봉을 지나 세석이 가까워 지면서 키가 작은 철쭉이 등산로 좌우에 늘어 서 있다. 능선을 돌아서니 완만한 산비탈의 드넓은 세석평전이 시야에 들어온다. 세석평전은 촛대봉에서 뻗어 내린 산자락이 치마 자락을 펼쳐 놓은 듯 펼쳐져 있는 평전이다.

세석평전을 가득채운 검붉은 단풍으로 물들은 철쭉이 부슬부슬 내리는 빗속에 선명하다.지리산 중 가장 드넓은 세석평전, 단풍으로 물들기 시작하고 운해가 밀려가고 밀려오며 한폭의 동양화를 연출한다.

벽소령을 출발하여 오락가락 하는 비를 맞으며 4시간만에 세석산장에 이르렀다. 우의를 입어 비에 젖지는 않았지만 속옷이 땀에 흠뻑 젖었다. 빗줄기는 굵어지고 바람이 몹시 부는데 땀이 식으며 한기가 온다. 취사장에서 밥을 해 먹고 서둘러 세석산장을 떠난다.

구름속의 연하선경, 감탄이 절로 나오고
세석을 출발하여 촛대봉에 올랐으나 구름에 쌓여 지척에 있는 것밖에 보이지 않는다. 비가 내리지만 재촉하지 않는다. 미끄러져 안전사고라도 나면 종주가 힘들다. 여유있게 쉬엄쉬엄 간다.

삼신봉을 지나 연하봉 근처에 이르니 연하봉 능선의 우뚝우뚝 솟은 기암같은 바위가 구름에 쌓인 채 구름이 밀려가고 밀려오며 홀연히 나타나기도 하고 사라지기도 하면서 장관을이룬다. 푸른 나무 사이에 군데군데 곱게 물들은 단풍 또한 어우러진다. 이것을 선경이라하는가, "연하선경" 지리10경 중의 하나이지만 비 내리는 연하선경은 또 다른 선경을 연출한다.

장터목산장에서 천왕봉으로
보고 또 보고, 발길이 떨어지지 않는 연하선경을 뒤로 하고 장터목산장에 이르니 오후 3시, 오늘은 장터목산장에서 1박이지만 3시부터 산장에서 쉬는 것이 아쉽다. 산장예약을 확인하고 베낭을 장터목산장에 둔 채 천왕봉을 향한다. 이틀간의 종주로 다리가 뻐근하고 피로하기도 하지만 내일 아침 비가 오면 일출을 못 볼 수도 있으니 천왕봉까지 갔다 온 후 아침에 비가 오면 장터목산장에서 바로 백무동으로 하산할 계획이다.

비가 그친 바로 뒤가 아니면 보기 어려운 천왕봉 운해
제석봉을 오르는데 비가 그친다. 나무가 없는 제석봉, 구름 속에 앙상한 고사목 만이 여기저기 외로이 서 있다. 제석봉을 지나 천왕봉을 향하는데 천왕봉은 구름에 쌓여 보이지가 않는다.

천왕봉에 올라서니 중봉이 희미하게 보일뿐 구름에 가려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다. 잠시 후 구름이 걷히면서 희디 흰 구름 위에 여기저기 산봉우리가 뾰족뾰족 솟아난다. 바다에섬이 떠 있는 듯, 구름 위에 솟아 있는 산인 듯, 맑은 날엔 볼 수 없는 천왕봉 운해, 몇 번을 천왕봉을 올라도 이런 광경은 비가 그친 바로 뒤가 아니면 볼 수 없는 장관의 운해이다. 잠시 나타났던 운해가 구름이 밀려오며 흔적을 감춘다.

장터목산장에서 1박
천왕봉 운해를 보고 장터목산장에 이르니 오후 6시, 오늘 10시간의 산행으로 지리종주 이틀째를 마감한다. 바람이 몹시 불어 취사장에서 저녁식사를 하고는 산장으로 들어간다.

내일아침 천왕봉 일출시간이 6시15분, 일출을 보려면 5시에 출발하여야 한다. 내일 새벽 별이 나면 천왕봉 일출을 보고, 비가 오면 그대로 백무동으로 하산하기로 하고 잠자리에 든다. 지리산 주능선 산장 중 유일하게 장터목산장은 남자와 여자를 다른 방을 배정한다. 다른 산장은 남자는 아래층, 여자는 2층이다.

지리산 종주의 대미, 천왕봉 일출
4시에 잠이 깨어 아침에 일어나니 바람이 세차게 불고 몹시 춥다. 여벌 옷을 껴입고 5시5분에 산장을 출발한다. 어둠 속에 전등을 번쩍이며 천왕봉에 이르니 6시, 비가 온 뒤라 오늘은 더 맑게 보이고 멀리 하늘이 붉게 보인다.

해가 뜨는 지점에 엷은 구름이 약간있어 구름이 점점 밝아지며 붉게 물들인다. 6시15분이 조금 지나니 붉은 태양이 조금씩 모습을 드러낸다. 일출을 보기 위하여 몰려 있는 등산객들이 일제히 함성을 지른다.

지리산 종주의 대미는 천왕봉 일출이다. 2일간 힘겹게 능선을 타고 올라 마지막 날 지리산 주봉인 천왕봉에 올라 지리10경의 제1경이라 하는 천왕봉 일출을 보고 하산한다. 천왕봉은 한라산 다음의 남한 제2 고봉, 다우 지역인 지리산은 날씨의 변화가 무쌍하여 일출을 보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3대가 덕을 쌓아야 일출을 볼 수가 있다고 하기도 한다.

장터목산장에서 아침식사
천왕봉 일출을 보고 장터목산장으로 되 내려오니 7시30분, 라면을 끓여 아침을 먹고 배낭을 챙겨 8시30분 장터목산장을 떠난다. 하산은 백무동으로 하여 남원이나 전주로 가서 서울로 올라갈 계획이다.

장터목산장에서 백무동을 4시간 내려가다.
장터목산장에서 백무동으로 하산하는 길은 지도상으로 3시간이다. 이 길이 다소 험하다 하여 4시간을 잡는다. 장터목을 출발하여 제석봉 산허리를 돌아 40여분을 돌바위 길을 내려가니 망바위가 있다.

망바위에서 능선을 따라 다시 50여분을 내려가니 백무동계곡으로 내려서는 산비탈이다.급경사에 돌과 바위만 앙상한 너덜지대, 징검다리를 건너듯 제멋대로 흩어진 돌을 밟고 내려간다. 무척 힘이 든다. 천천히 조심스럽게 20여분을 급경사 너덜지대를 내려가니 참샘이다. 참샘에서 식수를 채우고 쉬어 간다.

참샘에서 다시 너덜지대를 20여분 내려가니 커다란 바위가 우뚝 서 있는 하동바위, 하동바위에서 40여분을 내려가는데 계속 너덜지대이다.

백무동은 경남 함양 땅인데 왠 하동바위...
옛날 장터목에 장이 서던 날 함양원님과 하동 원님이 산 좋고 물 좋은 지리산상의 장날을 둘러보기 위해 장터로 향했다. 풍류를 잘 알았던 두 원님은 뜻밖의 만남에 주변 경관의 아름다움을 찬탄하며 장기(혹은 바둑)를 두게 됐는데 하동 원님의 압승으로 끝났다.

내기에 진 함양 원님은 수중에 내놓을 만한 변변한 것이 없던 터에 승자를 놀려줄 요량으로 눈 앞에 우뚝 선 바위를 가져 가라고 말했다. 설마 바위를 가져갈 수야 있겠느냐는 투였다. 하동 원님은 이에 뒤질세라 고맙다며 그 자리에서 이 바위를 하동의 지명을 따 하동 사람들의 바위란 뜻으로 「하동바위」로 이름해 버린 것이 그만 함양 땅에 있으면서도 산 너머 하동바위가 되고 말았다 한다.

하동바위 부근 너덜지대 안전사고 다발지역
능선에서 참샘까지 20분, 참샘에서 하동바위까지 20분, 하동바위에서 다시 20분 약 1시간 거리가 완전 너덜지대이다. 이 부근이 지리산 코스 중 안전사고 다발 지역이다. 해마다 안전사고가 많이 일어 나는데 주로 발목을 삐거나, 넘어져 다치거나, 탈진하거나 한다.

이 날도 이 길로 하산하는 사람이 그리 많지 않은 데도 한 사람이 발목을 다친 듯 절룩거리며 내려간다. 준비해간 파스를 발라주고 진통제를 준 뒤 다시 내려간다. 무릎이나 다리에 이상이 있거나 심히 지친 상태에서 하동바위 길은 쉽지 않다.

천천히 쉬어가며 이 길을 통과한다. 백무동으로 하산하니 12시30분, 여기서부터 버스정류장까지는 400여 미터, 가게가 하나 있다. 막걸리와 두부를 시켜 2박3일간 종주를 완주한 기념으로 완주 주를 건배한다.

백무동에서 남원으로
백무동에서 남원을 직접 가는 버스는 1일 3회 정도 있지만 인월 가는 버스가 30여분 간격으로 있다. 인월 가는 버스를 타고 20여분을 가니 인월정류장, 인월에서는 남원과 전주로 가는 버스가 바로 연결된다. 남원행 버스를 타고 2시25분 남원에 도착하여 고속버스터미널로 갔다. 택시비 1,900원, 남원 고속버스터미널에서는 서울 가는 고속버스는 30분 간격으로 있다. 빠른 차편으로 가려니 4시40분 좌석밖에 없다고 한다. 이왕지사 남원골 추어탕이나 먹고 광한루 관광이나 하고 가기로 하였다.

남원골 추어탕
택시를 타고 남원골 광한루로 향한다. 광한루에서 몇 백 미터 지나면 "새집"이라는 잘 알려진 추어탕집이 있다. 추어탕을 먹고 걸어서 10여분 거리인 광한루로 간다. 입장료 1,300원, 광한루를 둘러보고 택시로 고속버스터미널로 가서 4시40분 버스를 탔다. 남원에서 서울까지 4시간, 서울에 내리니 밤9시.

세석평전에 철쭉이 필 때에...
일기예보가 맞지 않아 때아닌 비도 맞았지만 비온 뒤가 아니면 볼 수 없는 너무나 멋진 광경, 산인지, 섬인지 구분조차 하기 힘들 정도로 운해에 쌓인 광활한 지리산! 이번 종주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곳이 세석평전에서 촛대봉, 연화봉을 지나 천왕봉에 이르는 구간, 세석평전에 철쭉이 만발할 때 이 구간을 다시 찾아 가리라 기약하며 2박4일간의 지리산 종주를 마감한다.

종주후기

장터목 - 백무동 코스 초보자는 유의해야
장터목에서 백무동으로 하산하는 코스는 수도권이나 중부권으로 귀가하는 경우 귀가시간이 단축될 수 있는 이점이 있으나 하동바위 부근 1시간의 경사가 심한 너덜지대 통과시 유의하여 하산하여야 한다. 되도록 천천히 하산한다. 초보자나 다리나 무릎에 이상이 있거나 시간이 촉박할 때는 가급적 이 코스를 피하는게 좋다.

가을 종주 여름종주 보다 다소 쉬워
가을에 시간을 낼 수 있다면 여름종주 보다 가을이 좋다. 체력이 떨어져 있고 땀이 몹시 나는 여름보다 가을이 한결 종주에 수월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