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아산높이 : 402.7m 특징, 볼거리 부아산은 역삼동에서 기흥읍 경계에 있는산으로 사복사면이 둥글게 돌출되어 그 형상이 어린이를 업고 있는 형상으로 질 부, 아이 아, 산으로 명명한다고 한다. 우리나라 속담에 말이 씨가 된다고 하는 말이 있다. 역삼동 구성말은 아홉 개의 별이 있는 마을로 3군 사령부가 들어왔고, 이동면 어비리는 고기가 살찌는 곳이라 하여 송전저수지가 되었다. 부아산은 어린이를 업고 안고 구르니, 용인대가 이곳에 서게 된 것도 말이 씨가 된 이야기 거리다. 백제 시조 온조가 여러 신하들을 데리고 이산에 올라 백제의 도읍지를 논의했다는 전설 때문에 산 아래 마을 이름이 궁촌이라고 한다는 이야기도 있고 또 마을 내에 군에 관계된 집안이 몇 대 살았다 하여 궁말이라고 부르게 되었다는 말도 있다. 부아산과 멱조현부아산과 멱조현 옛날 삼가리에 홀로 된 시아버지를 모시고 외아들을 키우며 사는 한 시골부부가 있었다. 이들 부부는 비록 가난하지만 남들이 부러워할 만큼 부친을 잘 봉양하였다. 할아버지 역시 손주를 끔찍이나 아껴주어 항상 집안에는 화기가 돌았다. 그런데 어느날 남편이 관가에서 시키는 부역 때문에 여러 날 동안 집을 비우게 되었다. 남편이 없는 동안에도 부인은 시아버지를 극진히 모셨고 시아버지는 아들 대신 나무를 해서 시장에 내다 팔았다. 시아버지가 돌아올 때쯤이면 항상 아이를 등에다 업고 배웅나가 고갯마루에서 시아버지를 기다렸다. 그런데 웬일인지 밤이 깊어가고 있는데도 시아버지는 돌아오지 않았다. 등에다 아이를 업은 부인은 조금 더 조금 더 하는 마음으로 앞으로 가다가 자신도 모르는 길을 헤매게 되었다. 한참을 헤맸을까 가까운 곳에서 사람의 비명소리 같은 것이 들려왔다. 부인은 혹시나 시아버지가 짐승에게 해를 입고 있는 것이아닌가 하여 그곳으로 달려가보았다. 과연 그곳에서는 시아버지와 호랑이가 죽음을 무릅쓰고 싸우고 있었다. 이 광경을 본 부인은 호랑이를 크게 꾸짖으며, 네가 정말 배가 고파서 그런다면 내 등에 업힌 아이라도 줄 터이니 우리 시아버님을 상하게 하지 말라고 하였다. 그러고는 어린아이를 호랑이 앞에 주자 호랑이는 아이를 물고는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다. 겨우 정신을 차린 시아버지는 손주를 잃은 슬픔에 오열을 금하지 못하였으나 며느리의 간곡한 애원으로 집으로 돌아왔다. 돌아와서 나는 이미 늙었으니 죽어도 한이 없을 터인데, 어찌해서 어린아이를 죽게 했느냐 하고 물었다. 그랬더니 부인은 어린아이는 다시낳을 수도 있으나 부모는 어찌 다시 모실 수 있겠습니까? 하며 마음 상하지 않으시길 새삼 부탁하였다. 시아버지도 며느리가 더욱 마음 아파할까봐 겉으로는 슬픈 척도 하지 않았다. 부아산은 바로 이때 부인이 아이를 업고 헤매던 곳이라고 하며, 멱조현은 시아버지를 찾던 고개라는 뜻으로, 아이의 할아버지를 찾아 넘는 고개 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산행 코스 용인대학교 - 부하산 - 하고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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